강남 중심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부띠끄모나코 27층 벤트하우스. 성필규(41) PK투자자문 회장은 틈날 때마다 사무실 한쪽에서 카나리아를 돌보며 시간을 보낸다. 몇 년 전 암수 한 쌍을 선물 받아 기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수십 마리로 불어났다.
 
카나리아는 공기가 조금만 탁해져도 살지 못하는 예민한 동물이다. 19세기 광부들이 새장에 넣어 ‘위험 경보기’로 갱 속으로 가지고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 변화와 위험을 가장 먼저 포착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한 금융 승부사들의 세계와 닮은꼴이다. 

성 회장이 주식 투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994년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강대 경영학과에 2학년으로 복학한 무렵이다. 투자론 수업을 들으면서 시험 삼아 주식을 조금 샀고 이내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경이적인 수익률로 주목을 받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중요한 고비마다 스스로 진화하며 길을 찾아냈다. 주식에서 파생상품으로 그리고 또다시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이어진 그의 투자 궤적에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종잣돈 150만 원으로 주식 투자

전주에서 태어난 성 회장은 초등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맡던 모범생이었다. 부모님 모두 교편을 잡고 계셨다. 하지만 중학교 때 어머니가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부모님 월급까지 차압을 당했다.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그는 말썽꾸러기 문제아가 됐다. 

서강대 경영학과에 입학해서도 교내에서 신문 배달을 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뛰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그는 학창 시절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은 애초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때마침 주식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줬다. 

아버지가 준 150만 원이 종잣돈이 됐다. 몇 번 돈을 벌면서 스스로 주식에 재능이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돌이켜보면 시장이 좋았던 덕분이지만 그때는 자기 실력이라고 믿었다. 

1998년 졸업과 함께 망설임 없이 전업 투자자의 길로 뛰어들었다. 신촌 작은 원룸에 컴퓨터 한 대,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들여놓고 하루 세끼를 배달해 먹으며 투자에 몰두했다. 주식시장이 열리는 장중에는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빈 그릇을 문밖에 내놓으면 식당에서 알아서 가져갔다. 1990년대 말부터 정보기술(IT) 붐을 타고 주식 사이트가 유행하자 성 회장은 ‘알바트로스’라는 필명으로 싱크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많은개인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금도 그를 본명보다 ‘알바트로스’라는 필명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수익이 늘어나면서 투자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단타 데이트레이딩이 기본이었다. 운이 좋을 때는 하루에 500만~600만 원을 벌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취업 생각은 더욱 멀어졌다. 2000년 IT 버블 붕괴로 시작된 폭락장은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번 돈은 시장이 준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2001년 결정적인 시련이 찾아왔다. 속칭 ‘작전주’에 손을 댄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종목에 작전 세력이 붙어 얼마까지 갈 것이라는 소문을 들어도 무시했지만 실제 맞아떨어지는 것을 몇 번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성 회장은 그때까지 번 2억 원과 지인들이 맡긴 8억 원 정도를 작전주 투자로 한방에 날려버렸다.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2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또 한 번 작전주 매매에 나섰다. 두 번째 실패는 더욱 비참했다. 사채까지 끌어다 써 빚쟁이들을 피해 다녔다. 성 회장은 “죽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다 잊고 쉬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고 무작정 포항으로 내렸다. 그날 그 선배 집에서는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창고 겸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려 스티로폼을 깔고 11월 추위를 견뎠다. 거기서 보름을 지냈다.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연거푸 큰 실패를 경험한 뒤라 회의가 밀려왔지요. ‘정말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걸까’ 수없이 질문했죠. 그러다 답을 얻었어요. 누군가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거죠.”

또 주식 투자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도 얻었다. 주식시장은 하락장에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종목을 골라 장기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매일 매일 수익을 내야 하는 전업 투자자에게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성 회장은 이 일을 계기로 주식에서 파생상품으로 돌아섰다. 선물과 옵션 투자는 주식과 달리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 방향성만 맞히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장 앞에 미약한 존재

“그때 작전주를 통한 대박의 꿈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신기루 같은 미혹일 뿐이죠. 거래 자체를 통해 당당하게 승부를 볼 수 있는 선물과 옵션이 훨씬 ‘페어’한 게임이에요.”

성 회장은 파생상품에서도 재능을 보였다. 첫해인 2003년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4년 들어서도 26주 연속 수익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다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2004년 5월10일. 성 회장은 지금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중국의 기습적인 금리 인상 발표가 나오자 순식간에 주가가 10% 이상 폭락했다. 그는 적정 수준의 주가 하락은 견딜 수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이 무제한으로 늘어나는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 그날 하루 정확하게 12억8400만 원을 날렸다. 

“손절매를 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시장 앞에서 그냥 몸이 얼어붙었어요. 넋이 나간 거죠.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전등이 탁 꺼지듯 판단이 중지된 상황이죠. 모니터에 나오는 손실 금액은 급격하게 커지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사람이 시장 앞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았죠. 평범한 시장에서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 절대 안 나오거든요.”
성 회장은 이번에도 포기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시장의 본성을 알았으니 그걸 극복할 수 있는 툴을 찾아야죠. 시스템 트레이딩이 바로 그 해답이었어요.”

인간은 탐욕과 공포라는 근원적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컴퓨터는 냉혹하다. 미리 설정된 투자 모델에 따라 조건만 일치하면 가차 없이 거래를 단행한다.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방향을 정한 성 회장은 당시 앵커차트 대표로 있던 장준호 현 PK투자자문 사장을 만난다. 그는 차트에 정통한 일급 프로그래머였다. 

2004년 두 사람은 강남역 근처에 있던 SK증권 지점 사무실 한쪽을 얻어 세타파워를 설립했다. 금융시장에서 세타(Θ)는 시간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세타파워는 ‘시간의 힘’이라는 뜻이다. 시간을 믿고 서둘지 말자는 거창한 뜻을 회사 이름에 담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전지 회사냐’는 반응을 보였다. 성 회장이 투자 모델을 만들면 장 사장이 이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2년간의 작업 끝에 2006년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성 회장이 만든 트레이딩 시스템은 금융 위기가 세계를 덮친 2008년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 달 만에 100~ 200%의 수익을 내며 큰돈을 벌었다. 워낙 계좌 수익률이 높다 보니 거래 증권사를 통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성 회장은 2010년 PK투자자문을 설립해 제도권에 진출했다. 그런데 그 사연이 재미있다. 부모님이 퇴직금을 당시 인기 있던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에 넣었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 40%까지 떨어졌다. 

“네가 투자를 그렇게 잘하면 너만 돈을 벌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벌게 해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시더군요. 대한민국 최고라는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을 보면서 제도권에 대한 불신도 갖게 됐고요. 내가 실력으로 뭔가 보여주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제도권에 진출해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오래 고민해야 하고 일단 결정하면 상당 기간 믿고 기다려 줘야 하는데 한국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결정은 굉장히 쉽게 하고, 그런 만큼 오래 믿고 기다리지 못한다. 

파생상품을 삐딱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걸림돌이다. 파생 시장은 공인된 도박판과 같다는 인식이다. 성 회장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타워팰리스에 살며 벤트리를 타고 다니는 투자 고수’라는 식의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나간 것이다. ‘개미들 돈 따서 외제차 끌고 다니니 좋으냐’는 등 온갖 비난 메일이 쏟아졌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선물과 옵션은 결코 도박이 아니다. 

“파생상품은 철저하게 확률과 통계의 세계입니다. 그걸 도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잃는 거죠.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은 결코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파생상품 시장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첨단 금융 기법으로 무장한 기관투자가들이 즐비하다. 개인이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옵션 투자로 수백 배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가 나오면 개인 투자자들이 우르르 옵션 시장으로 몰려든다. 

투자자의 천성 없다면 포기하라

과연 뛰어난 투자가는 타고나는 걸까. 성 회장은 “투자로 톱 클래스에 오르려면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배포, 당나귀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 셋을 모두 갖춘 트레이더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업 투자자가 아니라 직업을 따로 갖고 틈틈이 재테크로 투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천성, 즉 마인드다.

“투자는 노력 곱하기 천성이에요. 노력 더하기 천성이 아닌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천성이 ‘0’이면 결과도 ‘0’이죠. 매일 경제 TV 켜 놓고 인터넷 동영상 보고 주식 강의 듣는데도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자신에게 투자자로서 천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카드든 화투든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 돈을 잃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티가 안 나는 사람은 천성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투자로는 큰 재미를 보기 어렵다. 

성 회장의 기본적인 투자 원칙은 수익은 길게 손실은 짧게 가져간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수익이 나면 불안해 금방 차익 실현을 해 버린다. 수익이 쌓이다가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손실이 나면 계속 물타기를 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성 회장은 “투자로 돈을 잘 벌려면 잘 잃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화투에서도 3점을 주지 않으려다 더 크게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3점짜리를 계속 주다가 ‘피박’, ‘광박’까지 합해 더 크게 한 번에 벌어들이는 게 훨씬 유리하다. 돈을 잘 잃을 줄 아는 사람은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빼놓지 않고 다 먹는다. 3점짜리 게임을 하는 사람은 결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전업 투자자로 살아온 삶에 후회는 없을까.

“주식을 알고 파생상품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투자는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젊은 날 모든 것을 거기에 바쳤고요. 어찌 보면 삶 전체였어요. 앞으로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투자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투자가 너무 재미있어서 하는데, 상대방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해요. 모니터 저편의 상대가 내 돈을 가져가기가 웬만해선 쉽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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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문사 vs 금융부띠크  (0) 2012.07.30

투자자문사 vs 금융부띠크
“맞춤형 투자 해드립니다”
소수 고액자산가 대상의 ‘그들만의 리그
 

은행, 증권사 등 각 금융회사마다 설치돼 있는 프라이빗뱅크(PB)센터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고액자산가들이 효율적인 자산관리를 위해 이용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산관리 외에 투자를 통해 고수익을 거두기 위해 이용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투자자문사와 사설 투자업체인 금융부띠크이다.  주성식 기자 juhodu@wealthm.co.kr

문, 잡지 등에서 증권 관련 기사를 읽다보면 자주 눈에 띄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강남 큰손’일 것이다. ‘경기가 활황을 보이면서 강남 큰손들이 다시 증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요즘 강남 큰손들의 관심은 온통 ○○상품에 쏠려있다’ 등의 문구를 보면 경제기사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강남 큰손이 주식이나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음을 쉽사리 눈치 챌 수 있다. 
사실 강남 큰손이란 투자자금 여력이 넉넉한 고액자산가를 일컫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주식시장이나 금융상품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개개인에 불과한 고액자산가들의 자금을 모아 일정한 투자형태를 보일 수 있도록 조언하고(투자자문) 투자를 맡아주는(일임투자) 곳이 있기 때문이다. 

자문·일임 등 서비스 제공이 주업무 
투자자문사는 투자자들에게 투자에 대한 지식과 함께 이들이 올바른 투자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거나 아예 투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일임받아 직접 자신의 판단 하에 자산운용을 해주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하는 금융회사이다. 
투자자문사를 설립해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에 투자자문업자 및 투자일임업자로 등록을 해야 한다. 회사에 따라 자신들의 업무수행 능력에 맞춰 투자자문업이나 투자일임업만을 등록할 수도 있고, 두 가지를 다 등록하는 곳도 있다. 
또한 투자자문과 일임투자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업 투자자문사 외에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등의 다른 금융회사들도 겸업 투자자문사로 등록해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외에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간행물이나 전자우편 등을 통해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판단이나 가치에 대해 조언을 하는 ‘유사투자자문업’도 넓게는 투자자문사의 업무 범위에 속한다. 다만, 유사투자자문업자는 금융위원회에 신고하도록 돼 있으나 정식으로 인가받거나 등록된 금융회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성격이 조금 다르다. 

“믿고 맡길 테니 재량껏 투자하라” 
투자자문업은 말 그대로 투자자들의 투자판단에 대해 구술, 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조언하는 업무를 말한다. 즉, 종목, 종류, 수량, 가격, 매매의 구분,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 등 투자하고자 하는 유가증권의 가치 및 투자판단에 대한 컨설팅이 주된 업무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제시가 수반돼야 한다. 정당한 절차에 의해 공시되지 않은 풍문(흔히 찌라시라고 불리는 루머가 이에 해당된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정부나 기업 등의 정책에 대한 추측, 유가증권시장 전망에 대한 단정적인 판단 등의 정보제공은 금지된다. 
이에 반해 투자일임업은 투자자문사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맡아 그들과 일임계약을 맺고 자기 판단을 통해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투자자가 투자자문사에게 ‘너희를 믿고 내 돈을 맡길 테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 투자일임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투자자문사가 갖고 있는 투자철학과 각종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투자전략, 그동안의 투자성과 등을 믿고 큰 돈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자문사는 이같은 투자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임계약을 맺고 유치한 자금을 자신의 철학과 전략에 따라 재량껏 운용한다.

2004년 이후 자문사 설립 봇물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잡혀있는 지난해 12월말 현재 전업 투자자문사 수는 108개. 이는 전년도인 2008년말(92개)보다 16개사가 늘어난 것으로, 국내 주식시장이 대세상승을 하기 시작했던 2004년 이후부터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2004년 전업 투자자문사 수가 48개였던 것을 감안하면 5년 동안 두 배가 넘게 늘어난 셈이다. 
이처럼 투자자문사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일단 투자자문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요건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임업의 경우 최소 자본요건은 지난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을 전후로 해서 기존 30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낮아졌다. 자문업의 최소 자본금은 5억 원이다. 
하지만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만이 다는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펀드보다는 사모펀드를 통한 자신의 성향에 맞는 맞춤형 투자를 원하는 고액자산가들의 발길이 투자자문사로 향하기 시작했고, 이런 수요의 증가가 자문사 증가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사모펀드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한정된 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 외에 경영권 참여나 기업인수 등 다양한 투자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이다. 자신과 비슷한 투자성향을 가진 몇몇 소수의 투자자들과 맞춤형 투자를 하기 원하는 고액자산가들에게 적합한 수단인 셈이다.

전문 운용인력 확보해야 설립 가능 
맞춤형 투자를 원하는 고액자산가들의 입맛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이런 고액자산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투자자문사들은 전문성 강화와 함께 능력있는 전문 운용인력 확보에 힘쓰고 있다. 자본금 이외에 투자자문사 설립에 필요한 조건 역시 바로 전문 운용인력(펀드매니저)의 확보 여부이다. 
일임형 투자자문사의 경우 전문 운용인력은 네 명 이상 확보해야 설립이 가능하다. 투자자 고객과 1:1 투자컨설팅을 수행하는 자문형 투자자문사도 상근 임·직원 가운데 펀드매니저격인 집합투자자산운용사를 두 명 이상 둬야 한다. 
투자자문사를 설립한 대표이사 자신도 전문 운용역으로서 직접 펀드 운용에 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자문사의 대표이사들은 대부분 자산운용사는 물론 증권사,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에서 운용을 담당했던 운용역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이 투자자문사를 설립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운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산운용사 등 기존 금융회사에서 독립해 나와 자신만의 투자철학에 맞는 운용을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투자를 원하는 고액자산가들의 니즈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돈 되는 것은 뭐든지 한다
하지만 이들이 기존 금융회사에서 독립해 나와 설립하는 것은 투자자문사 외에 또 있다. 바로 사설 투자업체인 ‘금융부띠크’이다. 
금융부띠크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모여 차린 사설 투자업체로, 과거 뉴욕 월가에서 전직 증권사 직원 등이 모여 주식거래 중개와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을 알선하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비제도권 사설 투자자문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업무영역이 투자자문 외에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는 아니다. 
금융부띠크가 투자자문사와 다른 점은 업무영역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부띠크에는 투자자문과 일임투자는 물론 M&A, IPO, 우회상장, 유상증자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차익거래(Arbitrage), 심지어 신설법인에 대한 인큐베이팅을 하는 곳까지 있을 정도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쉽게 말해 자본시장 내에서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지 다 하는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소형 성장주 위주의 투자자문과 일임투자를 하는 곳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금융부띠크를 설립하는 사람들 역시 증권사 영업직원 또는 애널리스트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차익거래나 M&A, 신설법인 인큐베이팅 같은 전문 금융부띠크의 경우는 증권사 국제파트나 IB부서, 창업투자사 등 특화된 전문부서나 회사 출신들이 많다. 

금융부띠크의 존재이유 ‘비밀주의’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금융부띠크는 보통 전문 운용인력 3~4명, 투자자금을 유치하는 마케팅 담당자 2~3명, 관리직 1~2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사설 투자업체인 만큼 금융위에 등록을 해야 하는 투자자문사와 같은 제약사항이 없기 때문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금융부띠크의 또다른 특징은 이들이 설정하는 사모펀드가 제도권 투자자문사를 통해 설정되는 그것과는 달리 펀드참여자 수나 설정액에도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사모펀드의 투자대상이 무엇인지, 투자규모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어 펀드에 관여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투자자문사와는 다르다. 
이같은 비밀주의는 자신의 투자 사항에 대한 노출을 꺼리는 고액자산가들이 꾸준히 금융부띠크를 찾는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금융부띠크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서울 강남 주변에 몰려있는 것도 이런 성향을 가진 고액자산가들이 이곳에 많기 때문이다. 
금융부띠크의 수익구조는 유치한 투자자금의 1%를 운용수수료로 받고 약정수익률은 연간 10~12%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운용성과가 좋아 약정수익률을 초과 달성하면 그 초과분의 15~30%를 인센티브로 받게 된다. 

투자자문사 전환 꾀하는 곳 많아 
하지만 금융부띠크의 이같은 특징들은 거꾸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정해진 법의 테두리 내에 있는 게 아닌 만큼 이를 이용하는 투자자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투명하고, 무슨 일이 있을 경우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고액자산가들의 금융부띠크에 대한 접근은 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신뢰할 만한 지인이 소개한다거나 뚜렷한 투자성과를 자주 거둬 해당 부띠크에 대해 확신을 갖지 않는 한 고액자산가들은 쉽게 돈을 맡기지 않는다. 
이는 많은 금융부띠크들이 제도권 투자자문사로 전환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고객 유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상 금융부띠크의 투자자금 유치는 순전히 대표자 개인의 인맥과 능력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자금여력이 충분한 금융부띠크 중에는 투자자문사로 전환하려는 곳이 많다. 
지난 1996년 ‘장생컨설팅’이라는 이름의 금융부띠크로 설립됐다가 2007년 투자자문사로 전환한 아샘투자자문이 그런 곳 중 하나이다. 금융부띠크 시절에는 주로 M&A와 기업금융, 차익거래와 관련된 자문업무를 수행했던 아샘투자자문은 투자자문사 전환 이후에는 주식 관련 채권 투자로 주종목을 바꿨다. 
물론 아샘투자자문이 투자자문사로 전환한 데는 앞서 언급한 고객유치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회사 규모를 더욱 키우기 위해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다. 금융부띠크 체제로는 우수 인력 모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제권 밖의 ‘그들만의 리그’ 
물론 투자자문사로 전환했을 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금융감독원의 감사가 싫어 금융부띠크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투자자문사는 고객과의 자문계약서를 감독당국인 금감원에 제출해야 하고, 반기 또는 분기별로 결산보고서를 작성할 뿐만 아니라 외부감사까지 받아야 하는 등 제약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금융부띠크들이 대외적인 노출을 꺼리는 것도 우선 투자자 고객이 이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이들과 어떤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을 시 금감원으로 간섭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금감원도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금융부띠크에 대해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상황이 이러니 현재 금융부띠크 수가 얼마나 되는지 해당 회사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파악 불가능이다. 금감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만큼 관련 통계도 없다. 일반인들과는 큰 관계가 없는 ‘그들만의 리그’라 치부하기에는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